캐리비안의 해적 : 낯선 조류(Pirates of the Caribbean: On Stranger Tides, 2011)
감독: 롭 마샬
배우: 조니 뎁, 페넬로페 크루즈,. 제프리 러시, 케빈 맥널리
조니 뎁 만큼 다양한 영화에 출연한 배우도 드물거니와, 영화에 묻히지 않고 본인의 개성을 그대로 간직한 배우도 드물다. 그의 이미지라면..아웃사이더, 어른이 된 피터팬 등이 떠오른다. 엉뚱하고 장난기 있으면서도 어딘가 주류에 포함되지 않고 자유로운 느낌. 그러한 그의 이미지에 사기꾼같은 이미지를 덧씌운 것이 캐리비안 해적의 잭 스패로우 이다.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조니 뎁이 차지하는 비중은 인디애나 존스의 해리슨 포드 만큼이나 절대적이다. 그러나, 해리슨 포드의 역할을 샤이아 라보프가 대신 할 수는 있겠지만-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서 그런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조니 뎁이 없는 캐리비안의 해적은 상상하기 힘들다. 헐리웃 영화사(史)에서 '잭 스패로우, 캡틴 잭 스패로우'의 입지는 '본드, 제임스 본드' 나 '닥터 인디애나 존스'와 대등한 위치를 가지게 되었다. 잭 스패로우는 일반적인 대작 영화들의 영웅적인 인물들과는 다르게 허술하고 무계획적이고 이기적이며 무소유적인 캐릭터로 그려지며 기존 영웅 이미지를 비틀고 있으며, 그것이 20세기형 슈퍼 영웅들의 전형적 틀에 식상한 자유분방한 21세기의 넷(NET) 시대와 공통점을 가진다는 것이 캐리비안 해적의 한가지 흥행요소가 아닌가 여겨진다.
1492년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후, 서구 유럽의 열강들 사이에 금과 은 혹은 보물을 찾아 대항해시대가 열린다. 먼저 신대륙을 향한 경쟁에 나선 스페인과 포르투칼 사이의 과열 경쟁을 막기 위해 교황이 대서양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의 모든 신대륙 권리를 두 나라에 양보한 조약에 불만을 품은 다른 유럽국들이, 적국에 대한 해상약탈을 민간이 할 수 있도록 방조한 것이 해적의 시초라고 한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은 그런 세계사의 흐름이 요동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해적영화에는 사람들이 모험에서 동경하는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다, 그것은 인류가 땅에 올라온 이후 부터 원초적 동경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이고, 끝없는 호기심의 대상이다. 바다를 통해 용기있는 자들은 신대륙으로 옮겨 갔고, 부를 얻었다. 도전적인 항해가 있고 달콤한 보물이 있는 반면, 무서운 저주와 끓어오르는 분노와 배신도 있다. 이렇게 영화로 만들기에 좋은 소재들이 가득한 것이 해적영화지만 의외로 헐리웃에서 만든 기억나는 대형 해적영화라곤 '컷스트로드 아일랜드(1995)'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마저도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스타워즈가 블록버스터 시대를 연 이래로 초대형 영화는 SF에 몰두했다. 첨단 테크롤러지의 찬양과 우주에 대한 환상들이 영화속에서 관객들의 눈을 사로 잡았고 슈퍼맨이나 로보캅, 록키 같은 반듯한 영웅들 사이에서 해적과 같은 반영웅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2003년 개봉된 '블랙펄의 저주'는 무르익은 CG기술로 스펙타클한 해양 전투신과 해적들에게 걸린 저주가 달빛에 드러나는 부분 같은 복잡한 장면도 화면에 구현할 수 있었다는 점, 또한 비슷한 쟝르의 영화가 대형 영화 시장에 없었다는 점에서 흥행에 이점이 있었다고 여겨진다.
캐리비안의 해적은 1편부터 그랬지만 영상미가 뛰어난 영화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해양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선박의 뒤편을 전경신으로 멀리서 잡으면 선박의 모습과 바다의 짙은 청색, 흰 파도 그리고 하늘까지 좋은 그림이 안 나올 수가 없다. 하물며 그 선박이 아름다운 중세 범선이라면 더 이상의 말도 필요가 없다. 거기다가 1편부터 3편까지 감독한 '고어 버번스키'의 화면 감각은 -물론 1편부터 4편까지 촬영감독은 같은 사람이다- 스토리를 따라가기 바쁜 다른 여타의 대형영화들과는 틀리다.
전경은 아름답고, 군데군데 공을 많이 들인 것이 분명한 의외의 앵글에선 더욱 아름답다. 마이클 베이의 고속촬영과는 또 다른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바다와 하늘 그리고 땅의 짙은 초록색 풍광들은 여름 휴가에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로망들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캐리비안의 해적이 가지고 있는 좋은 화면 색감을 만끽하고 싶다면 3D보다는 일반 화면으로 보기를 권한다.)
캐리비안 해적 시리즈 4편을 따로 따로 떨어뜨려 다른 영화로 보기는 힘들다. 해리 포터처럼 스토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라서 시리즈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영화에서 4편을 묶는 스토리의 연결고리가 너무 허술하여 그런 것 같다. 1편을 제외하고 '망자의 함'부터는 등장 인물간의 배신과 동맹(alliance)이 너무 자주 일어나다 보니 선악의 구분도 불확실하고 적과 아군의 구분도 모호하다. 이건 이 영화의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긴 러닝 타임동안 수차례 반복되다 보니 보는이를 피곤하게 한다. 스토리를 따라 가다 어느 순간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스토리가 아니야' 라며 스스로 위로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등장인물들은 스토리에 구애받지 않고 항상 유쾌하고 태평하다. 보기에 부담없지만 이 영화를 걸작으로 추천하게 할 수 없는 유일한 요소가 관객들이 긴 스토리를 따라 갈만한 당위성이 영화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겁고 꽉 짜여진 이야기는 어차피 '캡틴, 잭 스패로우'와는 맞지 않을테니 불만을 가질 필요는 없겠다.
캐리비안 해적 시리즈의 네번째 영화 '낯전 조류'는 감독이 롭 마샬로 바뀌어 영상과 액션신에서 약간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시리즈가 원래 가지고 있는 여름철 블록버스터로서의 매력은 여전히 승계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이고, 007영화처럼 스토리보다는 볼거리가 풍부한 영화 중에 해적이 주인공인 유일한 해양영화라는 점에서 그 희소성은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