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다이어리

모비 딕(Moby Dick)

센타우리인 2014. 3. 18. 06:22

 

제목: 모비 딕(Moby Dick)

저자: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역자: 김석희

출판: 작가정신

 

 가 이 책을 산 것은 2011년 12월 4일이다(책 밑에 붉은 도장으로 그렇게 찍혀 있다). 난 2년 4개월 동안 책 한권도 읽지 않은 셈이다. 먹고 살기 바빴던 탓도 있지만 <모비 딕>이란 책이 너무 두꺼운 탓도 있었다. 요즘 같이 백수로 지내는 시간이 아니라면 영영 못 읽었을지도 모를 만큼 두께도 두께거니와 내용도 읽기 너무 어려운 책이었다. 처음 읽기를 시도한 것은 책을 사고 몇달이 흐른 뒤였다. 퇴근 후 조금 씩 읽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화장실에서, 어떤 때는 TV를 켜 놓고 누워서 읽었다. 

 사실 한국의 일반적인 직장인들이 책 읽을 시간을 내기는 정말 어렵다. 보통 8시에 퇴근해서 집에 와 씻으면 대부분 9시를 훌쩍 넘긴다. 늦은 저녁이라도 먹고 나면 잠자리에 들기 까지 시간은 길어야 1시간 반 정도인데 그 시간도 책을 집으면 쏟아지는 잠을 참는다 하더라도 10페이지 진도 나가기가 힘들다. 그렇게 보름 쯤 열정적인(?) 책읽기가 흐지부지 해지면 다시 책은 머리맡에서 뒹굴기 시작한다. 몇달이 지나 용기를 내어 100페이지 미만으로 읽은 책을 집으면 이야기 연결이 되지 않아 새로 리셋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악순환은 몇년간 되풀이 될 수도 있다.

 

 비 딕.

 내가 기억하는 백경은 이렇게 어려운 책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는 우리 형제들에게 책을 많이 사 주셨다. 백과사전류 전집, 삼성당 문학전집, 계몽사 어

린이 문학전집, 청소년 문학 전집 등등 기억나는 것만 헤어려도 열 손가락을 다 채울 것 같다. 덕분에 난 요즘처럼 입시공부에만 매달리는 청소년 세대들 보다는 문학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의 교육열(?)에는 뜻밖의 비밀스런 점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머니는 귀가 얇은 편이시고 손이 크시다. 아마도, 그 시절 옆집에 살았던 서적 영업하시는 분들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하시지 못하셨던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내손에 들어온 계몽사 문고에서 읽은 '흰 고래 모비 딕'은 옆에 꽂혀 있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과자를 먹으면서 볼 수 있었던 재미난 책 있었는데, 원본이 이렇게 어려운 내용일 줄이야.

 

 1. 모비 딕을 고른 이유.

 이 책을 사던 날, 오프서점에서 읽을 거리를 고르고 있었다. 두툼한 모비 딕을 보자 반하고 말았다. 일단 가격에 비해 책두께가 마음에 들었고, 최초의 완역본이란 선전문구도 마음에 들었다. 흠, 이 책이 최초의 완역본이라면 내가 예전부터 알고 있는 백경은 뭐지?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책을 고른 제일 큰 이유는 삶의 마지막 큰 전투(?)를 기다리고 있는 노병사의 심정이 점점 더 이해되는 것 같았던 그날, 결코 모비 딕을 잡을 수 없음을 어렴풋이 예감하면서도 그 괴물을 향해 돌진하던 에이해브 선장을 만나보고 싶었던 것 같다.

 

 2. 고래학 개론과 19세기 포경업에 관한 보고서.

 고래라는 동물을 누구나 알고 있고, 가끔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은 다큐를 통해 보기도 하지만, 포경업이나 고래를 연구하는 사림이 아닌, 일반 사람들이 <모비 딕>이 출간되던 때(1851년) 보다 고래를 더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모비 딕>의 첫장을 넘기면 이 책이 단순한 소설이 아닌 고래에 관한 연구서라고 할만큼 작가의 방대한 고래학 지식과 이책의 출판 시점에 존재한 고래에 관한 모든 책들의 모든 문장들이 빼곡하게 인용되고 있다. 성서에서 부터 비교적 근래(출판 시점기준)에 이르기 까지, 각종 연구서는 몰론 시문()까지 망라하고 있다. 소설에서 누가 이런 것까지 읽고 싶겠냐는 독자의 불평을 작가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나아가 멜빌은 그의 항해 경력과 포경선 선원으로 바다를 여행한 경험을 십분 발휘하여 일반 독자가 상상할 수도 없는 포경선의 생활과 고래잡이에 관한 잡다하지만 매우 구체적인 내용들 묘사하는데 이 두꺼운 책 분량의 상당 부분을 사용하고 있다. 덕분에, 이 책을 다 읽은 독자들은 19세기 포경선의 갑판에서 죽은 고래를 처리한 후 코를 찌르는 비린내를 맡을 수있는 것은 물론, 향유고래의 징그러운 크기와 끔찍한 폭력성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혹시나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분에겐 활자만으로 추측하기는 너무 어려운 문장들의 이해를 위해 일반판 보다는 삽화가 있는 양장본을 권한다.

 

 3. 보고서와 소설, 희곡 문체들이 혼재하는 소설.

 이야기는 화자라고 할 수 있는 '이슈메일'의 일인칭 시점으로 시작된다. '이슈메일'은 이교도 작살잡이 '퀴퀘그'와 포경선 '피쿼드호'에 선원으로 고용되어 마지막까지 '피쿼드'의 모험을 후세에 전하는 역활을 하게 된다. 악명 높은 향유고래 '모비 딕'과의 전투에서 한쪽 발을 잃은 '피쿼드'호의 선장 '에이해브'는 자신이 지휘하는 항해의 성공여부 보다는 개인적인 복수에 더 집착하는 독재자로써, 여러번 무리한 항해를 만류하는 일등 항해사 '스타벅'의 간청을 물리치고 모두를 지옥의 불구덩이로 인도하는 복수의 화신이다.

 소설은 총 135장에 이르는 방대한 이야기, 프롤로그라 할 수 있는 2개의 이야기와 에필로그 이루어져 있다.

 20장 까지는 '이슈메일'과 '퀴케그'가 만나서 '피쿼드'호에 승선하는 과정을 여느 소설과 마찬가지로 '이슈메일'의 시점에서 차분하게 묘사하고 있다. '백경'과 '에이해브'의 전투가 벌어지는 장면은 3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중간의 내용들은 포경선 '피쿼드'호의 모습, 향유고래를 잡아서 그 경뇌유를 처리, 저장하는 과정, 고래잡이에 필요한 여러가지 도구들, 그리고 향유고래의 습성들이 하나에 한장씩 보고서를 기록하듯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피쿼드'의 모험이 실재 존재했을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하기도 한다. 또, 각장마다 중심이 되는 인물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3인칭 시점으로 변주되기도 하고, <제 40장 한밤중, 앞갑판>같이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곳에서는 갑자기 희곡 문체로 바뀌어 지기도 한다. 심지어 '냇터컷 출신 선원5'처럼 대사할 인물까지 명시해 놓아 갑지기 갑판에서 벌어지는 연극의 객석으로 독자를 초대하기도 한다. 대사 앞에 인물과 지문을 굳이 적어 놓지 않았더라도 소설 <모비 딕>의 문체는 3인칭 시점에서 조차 빈도높게 사용되는 감탄사와 독백같은 문체로 희곡적인 그리고 고전적인 향기를 과장되게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러한 문체들은 비장한 인물들의 심정과 운명에 잘 어울리기도 하거니와 마침내 마주하게 된 미치광이와 괴물의 사투에 마치 전우주적인 숙명과 이유가 있는 것처럼 부풀려져 전달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4. 왜 에이해브는 모비 딕을 포기하지 못했나?

후기에서 역자는 '피쿼드호'의 이름이 백인 전투부대에 의해 전멸한 미국 북동부 지역의 인디언 부족 이름과 일치한다고 해서 <모비 딕>이 민족 분쟁 우화로 읽혀지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만약, 그렇게 본다면 백색 고래는 백인을 상징하게 된다. 또, 급속히 팽창하고 있는 포경업에 대한 경고 혹은 대항해 시대 이후 팽창 일로에 있는 식민주의과 곧 폭발될 자본주의의 의한 대양과 자연의 오염을 암시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읽는 사람에 따라 한없이 변주될 수 있는 심오하면서도 열려있는 이야기로 <모비 딕>을 보고 있었다.

 

  난 우리 모두가 얼마간은 에이해브와 같은 광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아니라면 적어도 나 자신에게 만큼은 사회적 책임과 교육된 이성으로 덮여져 밑바닥에서 잠자고 있을테지만 여건만 충족된다면 언제든 우리 내부에 있는 에이해브는 모든 이성을 마비시키고 내 몸과 정신을 지배할지도 모를 일이다. 비슷한 예가 아닐지 모르지만 왜 사람들은 위험한 에베레스트에 오르는지 생각해 봤다. 에베레스트에 올라도 아무런 경제적 이득이 생기지는 않는다. 만약 어떤 위대한 탐험가가 아무도 살지 않은 무인도에 처음 상륙하여 자신의 깃발을 꽂을 수있다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베레스트에 처음으로 올랐다고 해서 에베레스트 산이 등정가의 땅이 되지는 않는다. 등정가에겐 탐험정신, 명예 등 그 높은 산에 오른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수많은 산악인들이 그곳에 오르려다 목숨을 잃은 것을 생각하면 일종의 광기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에이해브에게 그와 같은 탐험정신을 적용하여 모비 딕을 정복해야 할 산이라고 치환하면 그에게 그의 선원과 배를 수장시킨 책임의 면죄부를 줄 수 있을까.

 

 

인간은 정복욕과 낭비벽이 심한 존재이다. '피쿼드' 같은 포경선들이 향유고래를 쫓아 대양을 이 잡듯이 뒤진 이유가 머리에 들어있는 경뇌유를 얻기 위해서라면, 비숫한 시기에 상아를 얻기 위해 무자비하게 죽인 코끼리, 가죽을 얻기 위해 버팔로들을 무자비 하게 죽인 것도 결국은 인간의 낭비벽, 사치벽 때문이다. 그러나, 에이해브 선장이 힌 고래를 추적한 것은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다른 보통의 포경선처럼 선주와 선원의 낭비벽과 사치스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였다면 지옥같은 흰고래의 추적을 포기하고 '스타벅'이 그렇게 바라던 안락한 아내의 품을 찾아 내터컷으로 돌아 갔을 것이다.

 

 '에이해브' 선장처럼 한 분야에 40년 가까이 종사한 사람들은 겸손하고 자신의 능력을 뽐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만약, 그들 중 자신의 기술이나 용기를 너무 과신하는 사람이 있다면,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인간의 능력 범위를 넘어서는 범주에 까지 잘못된 정복욕을 불태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욕심이나 지배욕을 통제하지 못하고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영역에까지 도전함으로써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음은 불론이고 주위 사람들까지 저주받은 불행속으로 인도하곤 한다. <모비 딕>의 '에이해브'는 그의 한쪽 다리를 앗아간 불가사의한 괴물을 향한 복수심에 눈이 멀어, 그 거대하고 공포스런 존재가 한낱 동물이기 전에 대자연이 존재를 허한 인간과 똑같이 지구의 일부와도 같은, 혹은 숙명처럼 인간과 공존해야 하는 고귀한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40년에 걸쳐 거친 바다 곳곳을 누볐을 고래잡이 전문가가 자신의 능력과 경험을 과신하여 한쪽 다리를 앗아간 거대 동물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하는 바로 그 순간은 태풍마저도 그를 두렵게할 순 없었지만, '피쿼드호'의 선원들과 함께 안락한 고향으로 돌아갈 기회를 영원히 놓쳤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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