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토탈 리콜(Total Recall, 2012)
감독: 렌 와이즈먼
배우: 콜린 파렐, 케이트 베킨세일, 제시카 비엘
SF쟝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 토탈 리콜 같은 영화들의 뼈대는 스릴러라고 봐도 무방하다. 기억을 잃고 알수 없는 적들에 쫓기는, 혹은 자신의 기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스릴러물의 오랜 기본 스토리 중 하나이다. 리메이크되어 돌아온 토탈 리콜을 보며 어릴적 읽었던 추리소설 '공포의 검은 커어튼(The Black Curtain, 윌리암 아이리시)'이 먼저 떠 올랐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적들에 쫓기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1959)'의 캐리 그란트도 생각이 났다. 가깝게는 단기기억상실증을 앓던 메멘토(Memento, 2000)의 그 악마같던 레너드도 생각난다. 토탈리콜의 퀘이드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존재에게 추적 당하고 있다는 점에선 최근 영화 '기프트(Echelon Conspiracy, 2009)'나 '이글 아이(Eagle Eye, 2009)'의 주인공들과도 비슷한 점이 있다. 이와 같은 스릴러물의 주인공들은 거대한 음모세력의 함정에 빠진 혹은, 기억을 상실하여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채, 암흑 속 미로를 헤쳐가며 자신을 위협하는 자들과 생명을 건 전투를 벌여야 한다. 관객들은 긴장하고 또 몰입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토탈 리콜은 뛰어난 SF작가인 필립 K. 딕의 원작 덕에 꽤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리메이크 된 것이다. 공간적 배경이라든가 등장인물이 조금씩 변형은 되어있지만 폴 버호벤의 '토탈 리콜(Total Recall, 1990)'에서 보여주는 이야기 구조와 큰 차이는 없다. 다만, 워낙 화제작을 많이 만들었고 독특한 자신만의 영화 언어를 가지고 있는 거장 폴 버호벤의 원작과 비교하기엔 단순히 액션영화 형태를 가지고 있는 '언더 월드(Underworld, 2003)' 시리즈의 렌 와이즈만 감독의 연출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 많다. 비주얼리스트로 알려져 있는 와이즈만 감독답게 최고 수준의 비주얼을 보여 주고 있지만 SF물에서 관객들이 기대하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사회 묵시록를 보여주는데는 한계를 드러낸다.
영화의 비주얼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영화 초반부 로리(케이트 베킨세일)와 퀘이드(콜린 파렐)가 추격신을 벌이는 공간적 배경인 노동자 계급(영화에서 지칭하는 명칭을 잊어버림 --)이 살고 있는 빈민촌의 모습은, 리오의 산동네 빈민촌의 풍경에서 형형색색 원색지붕을 콘크리트 빛 회색으로 대체하고, 또 다른 필립 K. 딕 원작영화로 기념비적인 SF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1982)'의 오마주로 보이는 무질서한 네온사인 간판이 어지러운 비오는 거리에다가,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 1995)'의 홍콩거리를 연상시키는 거리 풍경을 빌려 쓴 둣한 이미지로 고전SF영화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또한,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 2002)'의 고가차도 모습이라든가 '아이 로봇(I, Robot,2004)'의 터널 자동차 추격신에서 한층 발전된 토탈 리콜의 자기부상(?) 고가도로 자동차 추격신들은 박진감 넘치면서도 리얼리티를 놓치지 않고 있다.
원작 토탈 리콜의 공간적 배경은 화성이다. 화성은 지배세력과 피지배자들을 구분 짓는 공간적 계급으로 설정 되어 있다. 화성에는 공기가 없으므로 거주자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대기(공기)의 공급이 사용된다. 부족한 대기는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뮤턴트로 상징되는 화성인과 지배세력인 지구인들의 분쟁이 영화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인 셈이다. 신작에서는 원작의 공간적 배경을 화성에서 지하세계로 치환하고 있는데 어쩌면 언더월드의 감독으로서 당연한 결정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공간적 배경은 그렇다 치더라도 원작에는 분명히 암시되고 있는 미래사회 계급간 투쟁의 심도있는 이야기들이 신작에선 어딘가 수박 겉핥기식으로 지나간 느낌이 들어 아쉽다. 많은 SF 영화들은 오락적인 요소와 더불어 인간사회의 미래상을 예언하고 경고하는데 러닝타임 중 일부를 할애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는데 와이즈만 감독은 명작들의 비주얼들은 오마주하면서도 정작 알맹이는 깊이 고민하지 않은 것 처럼 보여 아쉽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와 더불어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SF대표작인 토탈 리콜은 그가 SF 영웅으로서 자리매김되는 주요 작품 중 첫자리를 차지한다. 콜린 파렐이 신작에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카리스마를 넘기는 힘들다. 케이트 베킨세일이 연기하는 악역을 본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만큼 케이트 베킨세일은 로맨스물에서의 청순한 이미지와 언더월드 시리즈의 영웅 혹은 반영웅으로의 이미지가 강한 배우인데, 원작에서 샤론 스톤이 연기한 팜므파탈의 캐릭터를 뛰어 넘어서기엔 미스캐스팅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가 이번 영화에서 연기한 로리란 인물은 원작에서 샤론 스톤이 분한 로리와 마이클 아이언사이드가 연기한 리히터를 합쳐 놓은 묘한 인물로 그려져 나름 그녀의 매력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만약에 누군가 이영화를 보고 원작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그건 와이즈만 감독의 첵임이 아니라 폴 버호벤이 원작 토탈 리콜을 너무 잘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폴 버호벤은 원초적 본능으로 샤론 스톤의 팜므 파탈 캐릭터를 창조한 심리 스릴러물의 대가이자 스타쉽 트루퍼스와 로보 캅에서 보여준 자본과 국가권력의 결탁으로 계급사회의 투쟁을 미래사회에 암시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이점에 대해 조금만 관용적인 자세를 가진다면 2012년 현시점에 가장 영상기술적으로 진보한 SF영화를 토탈 리콜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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