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정지영
배우: 안성기, 박원상, 문성근
'부러진 화살'을 드디어 봤다.
이야기 진행은 예상대로 빨랐지만 엮여 가는 스타일이 너무 정직(?)하여 중반 이후부터는 지루한 느낌도 있었다. 안성기가 연기한 김경호 교수는 사건을 일으키기까지 그의 심리적인 변화에 대한 설명이 구체적이지 않아 캐릭터 자체가 고집스럽게 보였다. 한편, 박원상이 연기한 박준 변호사란 인물은 너무 가볍게 설정되어 있어 보였다. 김경호와 박준, 필요 이상으로 너무 대조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극중 인물들의 언밸런스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진행될 수록 나도 물론이고 같이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화가 났다. 부러진 화살은 보는 사람을 분노케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외국영화와 비교할 것도 없이 최근의 한국영화와 비교해도 세련되지 못하고 관객을 즐겁해 줄 어떤 장치도 없어 보이는 이 영화가 왜 이렇게 화제가 되는 것 일까. 심지어 이글을 적고 있는 지금 다음(daum) 영화섹션의 역대 영화 평점 순위에 최고점수 영화로 올라가 있다.
1. 억눌려 있는 99%
오바마 미대통령은 올해 미국 대선에서 재선되기 위한 전략으로 부유층 세금을 더 거두는 공약을 내세워 중산층 이하의 유권자들 표심을 잡기위해 안간힘이다. 국내 정치권에서도 성장보다는 분배에 무게를 둔 정책들이 만들들어 지고 있다. 오늘 경향신문엔 일본의 유력 총리후보가 '기본소득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는 기사가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선거가 있는 해에는 항상 그래왔듯이 이런 시류들은 유권자 표심을 잡기 위한 단발성 이벤트가 될 수도 있겠지만 최근 이러한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는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흐름이 될 가능성이 있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사회를 지배한 것은 자본의 힘이었다. 자본을 가진 세력들이 권력을 선택할 수 있었고, 권력을 쥔 자들은 자본가들과 결탁했다. 기득권층 즉 상위 1%는 그렇게 자신들의 이익을 지켰고 운좋게 그들속에 편입된 자들은 다시 99%를 억업하기도 했다. 최근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는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민주주의와 자본 시스템을 가진 미국에서도 양극화에 따르는 일반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다다랐음을 잘 보여준다. 경제 시스템 뿐만 아니라 법 시스템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억울한 일이 생기면 법에 호소한다. 권력이 없고 자본이 없는 약한 사람들은 법에 호소하여 힘있고 돈있는 사람들로 부터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지킬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보통 사람들은 높은 소송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뿐더러 여러 힘있는 자들의 압력에서 법을 적용하는 사람들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고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문성근이 연기하는 판사의 모습에서 약한자를 길들이려하는 기득권층의 모습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 돈을 움직이는 자들, 착취하는 세력들. 그들은 99%를 협박하고 구슬리고 또 회유하는 등 갖은 능력을 사용하여 약자의 이익을 가져가고 자신들의 이익을 지킨다.
앞서 얘기한 최근의 흐름은, 그 약한 그 99%들이 높은 교육수준과 인터넷의 발달, 스미트폰의 보급으로 자신들이 이제까지 받아온 대우가 부당하고 기득권층이 누리는 특권과 부유함이 상식적인 수준을 넘어섰다고 인식하고 반발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볼 수도 있다. 부러진 화살은 이런 화나고 불편한 시기에 화를 낼 수 있는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영화인 것이다.
2. 힘은 자본을 가진 사람에서 지식을 가진 사람에게로
주인공 김경호 교수는 수학과 (부)교수였지만, 그가 갇혀있는 교도소의 독방은 온갖 법전으로 가득하다. 공판에서 판사의 법률지식에 맞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에선 법지식과 논리로 무장한 김경호가 법정을 완전히 장악하는 장면이 몇번 나온다. 피고가 오히려 판사와 검사를 법리로 제압하고 판사는 뾰족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장면들이다. 나중에 변호사는 김경호에게 재판에 이기고 싶은지 아니면 판사와 싸움을 하려는 것인인지 묻는다. 극중 약자였던 피해자가 지식으로 무장한 후 판사를 다그치는 장면은 일반적인 약자와 강자의 위치가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런 장면은 통쾌하지만 영화에선 약간 과하게 묘사된 느낌도 있어 불편한 생각도 들었다. 누구나 힘을 가지면 그럴 수가 있다. 그것이 힘의 속성이다. 법정에서의 힘은, 법을 얼마나 잘 알고 적절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가지게 된다.
앨빈 토플러는 미래사회 3부작에서 이렇게 역설했다. '미래사회는 지식사회이다. 지식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다.' 요즘은 누구나 의사고 증권 전문가이다.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그만큼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예전엔 지식을 습득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현대는 과학문명의 발달로 손가락짓(클릭) 몇번으로 수십,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전문지식에 쉽고 빠르게 엑세스 할 수가 있다. 암기할 노력도 필요가 없다. 이는 지식 즉 힘의 분배지도를 바꾸어 놓고 있다. 전문지식 집단인 법관들도 일정부분 그들의 힘을 나누어야 하는 시대이고 더 이상 판사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판사들은 위기감을 느낄 것이고, 99%는 통쾌함을 느낀다. 그런 시대 흐름을 이 영화가 몇 장면에서 보여준다. 관객들은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은 영화자체의 완성도나 미학적인 면에서는 범작에 가깝겠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시대를 흐름을 이야기에 담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영화에비친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토탈 리콜(Total Recall, 2012) (0) | 2012.08.16 |
|---|---|
| 맨 인 블랙 3 (Men in Black 3) (0) | 2012.06.12 |
|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Mission Impossible : Ghost Protocol, 2011) (0) | 2012.01.04 |
| 틴틴 : 유니콘호의 비밀(The Adventures of Tintin: The Secret of the Unicorn, 2011) (0) | 2011.12.24 |
| 머니볼(Moneyball, 2011) (0) | 2011.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