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비친세상

바람이 분다(The Wind Rises, 2013)

센타우리인 2013. 9. 22. 00:08

 

제목: 바람이 분다

연출: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안노 히데야키, 타키모토 미오리

 

 명인.

 일생 동안 한길을 걸어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단어이다.

만약, 원령공주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 영화에 대한 이미지가 구로사와 아키라의 중세일본을 배경으로한 사무라이 영화들에 머물러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십여년전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과 때를 같이하는 일본 문화개방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으로 인해 일본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어 놓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들은 몇가지 단어로 축약된다.

 첫째가 자연의 보존이다. 원령공주에서 잘 드러나 있지만 인간의 확장이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자연의 파괴를 경고하고 인간문명과 자연의 공존을 가치롭게 그렸다. 신들의 나라 일본에서 저주받은 신들(동물신)과 인간과의 처절한 전투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오무와 인간의 전투는 그런 자연파괴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둘째는 핵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것은 일본 애니메이션 전반에 나타나는 것으로 앞서 기술한 적이 있는 대로 핵 공격을 받은 지구상 유일한 나라가 가지는 일종의 트라우마의 반영이다. 또한, 지진이 많은 지대에 위치한 여건 탓에 항상 천재재앙을 대비해야 하는 나라로서 가지는 선천적인 보호본능 일수도 있다.

셋째, 하늘에 대한 동경이다. 그의 영화 중에 유난히도 하늘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많다. 천공의 성 라퓨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작품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하늘과 비행 테크놀러지에 대한 독창성에서 그의 하늘에 대한 동경심의 깊이를 알 수 있다. 결국 마지막 작품에 까지 하늘을 향한 꿈을 놓지 않고 비행설계사의 일생을 그리는 것으로 작품활동을 마무리하고 하고 있다.

 

그리고, 위 세가지를 아우르는 하나의 테두리가 있으니, 바로 애니를 실사영화와 구분하여 보다 애니답게 만드는 판타지의 적절한 사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과 꿈과 현실이 묘하게 뒤섞이며 관객도 알아채지 못하게 어느새 판타지의 한 중간에 서있는 영화의 주인공들.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고 유럽과 일본이 혼합되는 묘한 시공간. 그것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다.

 

 바람이 분다는 일본 함상 전투기 제로센의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의 꿈과 사랑을 다룬 전기 형태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감독의 다른 작품과는 다르게 사실적인 묘사에 충실하면서도 어린 지로의 꿈에 나타나는 카프로니 백작과 조우 장면등에서는 세련된 판타지풍의 그림과 전개를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관동대지진을 묘사한 장면에서는 끔찍한 땅의 울림을 지옥의 소리와도 같이 연출하여 사실감을 더해준다.

 그러나, 역시 영화 바람이 분다의 백미는 지로와 나호코의 사랑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애니메이션의 색감은 아무리해도 실사장면의 풍부한 색감과 빛의 조화를 따라갈 수가 없다. 다만, 실사 영화로 바람이 분다와 같은 장면을 찍을려면 수많은 사람들이 장면에 맞는 시간과 공간을 찾아서 기다려야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시간의 제약없이 그러한 장면을 상상력으로 연출할 수가 있다. 바람이 분다에서는 지로와 나호코가 재회하여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 까지의 경과를 바람과 비와 빛이 총동원되어 멋지게 그려진 다음 대화하는 듯한 첼로의 선율로 마무리 되어졌다. 실제로 영화 러닝타임의 많은 부분은 둘의 러브신에 할애하고 있는데, 실사영화였다면 좀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 자신의 꿈과 사랑을 둘다 포기할 수없었던 지로의 내면적 갈등이 부각될 법 신에서 조차 그냥 아름답게 처리해버려 다소 결말이 힘이 빠지는 느낌도 들었다.

 

 이 노대가(老大家)가 자신의 마지막 연출작에서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누군가는 이 영화에서 제로센의 날개위에 그려진 붉은 일장기만을 볼 것이고, 어느 누군가는 지로와 나호코의 종이비행기 데이트신에서 들려오는 첼로의 선율만을 듣고 싶어 할 것이다. 이미 70을 넘긴 노감독이 인생을 관조하듯이 차분하게 풀어낸 것은 지로의 꿈이 아니라 감독 자신의 꿈과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창조적인 시간은 10년뿐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내 인생의 창조적인 10년을 이미 헛되이 써버렸다고 하더라도 바람이 분다면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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