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한 초등생 조카 둘은 특별히 학원에 얽매이지 않아 또래보다 시간이 많은 편이다. 요즘 아이들은 스케줄이 장난이 아니다. 같이 도장에 다니는 한 아이는 방학이 더 바쁘다고 했다. 그러더니, 잠시후 ‘아, 늦잠은 좀 잘 수 있겠군요’ 라고 말했다. 하긴 늦잠을 잘 수 있다는 것도 큰 다행이다.
어른이든 아이든 시간이 많아 지면 게을러지기 마련이다. 이럴땐 일부러라도 일을 만들고 움직이는 것도 게으름을 막는 방법이 된다. 방학을 맞아 많은 시간들을 컴퓨터 앞에서 보내고 있는 조카들을 자극시킨다는 생각도 있고, 혼자 다니기 보다 조카들이랑 영화 보러 가는 것이 은근히 좋기도 해서 최근에 3편의 영화를 조카들과 보게 되었다.
슈렉 포에버(Shrek Forever After, 2010)
감독: 마이크 미첼
더빙: 마이크 마이어스, 카메론 디아즈, 에디 머피
일단 조카들과 나왔으니 슈렉을 봤어야 했지만, 아이들도 큰 흥미를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다.
관람 후의 표정도 그렇게 재미있었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음번에 쓰겠지만, 어른들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인셉션(Inception, 2010)을 보고 난 후의 표정이 훨씬 상기되고 만족스러워 보였다.
찾아보니 슈렉이란 이름으로 총 5편의 영화가 검색되었다. 많은 편이다.
슈렉이 가장 큰 평가를 받은 것은 아무래도 기존 애니메이션의 대명사인 디즈니 영화들의 캐릭터와 줄거리를 뒤집으며 패러디했기 때문일 것이다. 동화속 주인공들의 전통적인 선악 캐릭터를 뒤집고 관객들의 해피엔딩 기대치를 반전시키고..
그러나, 이런 패러디물에는 한계가 분명 존재하기 마련이다. 스토리가 없는, 일반적이지 않는 영화가 순간 순간 각 장면의 기발함과 아이디어로 장편영화를 시리즈로 만들며 같은 퀄러티를 유지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건 같은 개그 소재를 사용하는 코미디 코너의 수명과도 비슷한 면이 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 2편 이후의 슈렉은 패러디 물의 한계를 드러내며 본래 자신이 평가받은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 패러디영화가 가진 한계에 다다른 슈렉은 3편 이후부터 어정쩡한 판타지 애니메이션이 된 것은 아닌가 한다. 다시 말해서 관객이 기대한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한채 예전의 방식을 답습함으로써 관객에게 새로운 재미를 주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인셉션(Inception, 2010)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와타나베 캔, 조셉 고든-래빗
천재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새 영화가 나왔다. 인셉션..
역시 기대를 져 버리지 않는 몇 안되는 감독중 하나로, 항상 영화의 러닝 타임을 포만감으로 꽉 채우게 특징(?)이다. ‘메멘토(Memento, 2000)’를 보고 기발함과 치밀함에 감탄한 이후로 그의 연출작에는 일정부분 신뢰감이 든다. 특히, ‘인썸니아(Insomnia, 2002)’에서 보여준 알래스카의 서정적인 화면 같은 것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꿈에서 꿈을 꾼 것 같은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 있으리라 생각된다. 인셉션은 꿈을 설계하고 그 꿈에 다른 사람과 들어갈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놀란 감독은 인간의 뇌활동을 탐구하는데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메멘토에서의 단기기억상실증, 인썸니아에서의 불면증, 그리고 이번 영화 인셉션에서 꿈을 소재로 썼다. 모두가 흥미로운 소재들인데, 특히 단기기억상실증이 기억에 남는다. 자기가 자신이 한일을 모르는 상태는 일종의 공포로 다가온다. 자신이 선인지 악인지 모르는 상태..두렵지 않은가? 애슐리 쥬드는 영화 ‘블랙 아웃(Twisted, 2004)’에서 술만 먹으면 필름이 끊기는 증상을 경험한다. 형사인 그녀는 자신과 밤을 보낸 남자들이 연달아 살해당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죽인 것인지, 아니지 확신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메멘토의 기발함은 이러한 특이한 상황을 가정하고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을 탐구했다는 것이다. 이번 영화 인셉션에는 메멘토나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 2008)에서 보여준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내용은 찾을 수 없었지만 역시 인간의 정신활동 중 하나인 꿈을 소재로 블록버스터 급의 액션과 스릴을 보여준다.
특히, 4개의 꿈들이 중첩되는 복잡한 액자구조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꿈들 사이를 종횡무진 달리는 화면의 전환은 편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원래는 이 영화를 조카들과 볼 생각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보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영화라서 혼자 볼려고 집을 나서는데 큰 조카가 따라 붙었다. 그러니, 작은 조카도 누나의 뒤를 따라 나섰다. 극장에 도작해서도 조카들은 이 영화에 큰 관심이 당연히 없었다. 어른 영화니까..
그러나, 난 그날 이영화를 꼭 보고 싶었고 두 녀석은 마지 못해 수긍했다. 그러나, 앞서 얘기한 것처럼 영화를 보고 난 후의 아이들의 표정은 정말 재미있었다는 표정이었다. 몇가지 대화를 나눈 후, 큰 조카는 이영화의 내용을 나와 같은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12살이니까..
작은 조카(11살)는 이 영화를 이해할 수가 없다. 11살이니까..요즘엔 1년 차이가 그렇게 큰가 보다..
그러나, 영화 보는 도중 작은 조카의 표정을 가끔씩 곁눈질했는데, 정말 영화에 빠져있는 모습이었다. 이 녀석은 조금이라도 영화가 지루하면 딴짓을 하면서 지루한 티를 꼭 내는 인물인데, 그날은 본인이 이해는 안되지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영화에 몰입하고 있었던게 분명했다.
좋은 영화는 그런게 아닌가 한다. 인셉션의 이야기 구조를 완벽하게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냥 “꿈이 몇 개가 겹쳐있는 복잡한 세상에서 주인공들이 목적을 이루고 동료를 구하려고 한다.” 정도면 영화를 보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중간 중간 ‘킥’ 이라든가 ‘림보’라든가 더 긴박함을 주기위한 장치들을 즐기면 된다.
인셉션을 간단히 보면 결국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항상 비현실 즉 다른 차원의 세상에 호기심을 가져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아는 방법 중의 하나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고, 우리가 사는 현실을 확실히 규명하는 것은 비현실 혹은 다른 차원에 호기심을 가지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우리가 우주를 탐사하는 이유도 결국 우리 인류가 무엇이고 어디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물론 새로운 자원과 정착지를 찾으려는 이유도 있지만..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라면, 벌써 많은 영화들에서 다뤘던 이야기들이다. 인셉션의 광고 문구에서도 언급된 매트릭스도 있고, 우리 나라에도 흥행엔 실패했지만 장선우 감독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도 결국 현실과 비현실의 모호한 경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코브’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아내인 멜은 남편과 창조한 꿈속 세계(림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수십년 동안 자신들이 창조한 건물과 사람들과 심지어 아이들까지 현실과 다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매트릭스에서 스미스요원과 고급 레스토랑에 마주 앉은 배신자는 현실에선 맛볼 수 없는 스테이크와 고급와인을 입으로 가져 가며 니오와 그 일행을 파는 대가로 자신을 다시 매트릭스안으로 넣어 달라는 조건을 단다. 이처럼 현실과 비현실이 모호한 상태에서는 자신이 어디에 존재하든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는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인셉션은 이러한 주제에 어렵고 무거움 조금 덜고 블록버스터 형식으로 가볍고 재미있게 풀어 낸 영화가 아닌가 한다. ‘매트릭스’에서 접속을 해제한는 통로가 전화인 것처럼 인셉션에서 토템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 원래는 아내의 것이었던 코브의 토템이 돌고 있는 것을 눈여겨 본, 큰 조카가 극장문을 나서며 내게 물었다.
“삼촌, 주인공이 현실로 돌아온 것 맞아요?”
토이 스토리 3(Toy Story 3, 2010)
감독: 리 언크리치
더빙: 톰 행크스, 팀 앨런, 조앤 쿠삭
픽사의 11번째 장편 애니인 동시에, 현재와 같은 3D 장편 애니메이션 세상을 연 기념비적인 작품 토이 스토리(Toy Story, 1995)의 3번째 시리즈물이 돌아왔다. 픽사의 영화들은 항상 상상을 초월하는 스토리 라인과 개봉할 때 마다 업그레이드되는 3D화면의 기술적 진보를 동시에 공개함으로써 찬사를 받아왔다. 이번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어린이에서부터 어른들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액션과 스릴이 넘치는 장난감 주인공들의 모험담과 오리지날 캐릭터는 변화가 덜 하지만 주변 인물이라든가 태양광의 자연스러움등이 기술적으로 진일보 했음을 알리는 화면을 보여준다. 앞서 슈렉의 차기작이 부담스러운 반면에 이번 토이 스토리를 보고도 차기작이 기다려지는 것은 무엇보다 픽사의 20년 열정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재패니메이션이 자연이 주는 인간에 대한 경고등을 웅대한 스케일하고 화려한 화면으로 그려내고 있다면 픽사의 애니메이션들은 일상스런 소재와 귀여운 캐릭터들로 아기자기한 재미를 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처음 토이 스토리가 나왔을땐, CG장편애니메이션이 주는 신기함에 감탄하면서도 당시 표현된 사람의 얼굴이라든가 배경들이 부자연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픽사 측에서도 캐릭터를 장난감으로 잡아 가급적 실사 영화와의 차이를 줄일려고 한 것 같다. 아직도 실사와 CG의 차이는 많이 나지만 애니메니션이란 점에서 굳이 실사영화에 근접하려는 기술적 진보들이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픽사의 애니들은 이제 하나의 명품 브랜드가 되었다. 관객들이 픽사의 이름만으로 아무런 망설임 없이 영화를 고를 수 있는 건 그들이 지난 세월동안 엄청난 노력의 결과이고, 다행히 운도 따르는 편이었다. 특히, 최초의 PC를 만든 전설적 인물 스티브 잡스가 픽사를 인수하지 않았고 그대로 조지 루카스의 ILM에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영화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다소 괴팍한 면이 있긴 하지만 본인 스스로 청바지를 입고 신제품 발표회에 등장하는 잡스의 자유로움이 지금과 같은 픽사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일조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최근 아이폰 4G 수신감도 문제로 구설수에 올라있긴 하지만 여전히 닮고 싶은 CEO 1위인 잡스는 역시 하드웨어 전문가답게 영화 쪽은 아니었는지 픽사를 디즈니에 매각해버려 개인적으로 아쉬운 면이 있다. 아무튼 이런, 어떻게 보면 기적과 같은 일들 사이에서 토이 스토리는 세상에 빛을 보았고, 현재 까지 승승장구하며 전대미문의 길을 가고 있다고 하겠다.
벌써 픽사의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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