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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밑 아리에티(The Borrowers, 2010)

센타우리인 2010. 9. 12. 21:54

마루 밑 아리에티(The Borrowers, 2010)

감독: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이런 말하면 돌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난 일본을 좋아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 문화를 좋아한다. 김대중 정부의 '1차 일본 대중문화개방'을 검색해보니, 98년 10월 이라고 되어 있다. 그 시기는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는 시기와 맞물려 엄청난 일본 문화 컨텐츠들이 한국에 밀려 들었다. 그 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원령공주'였다. 이미 뉴스 등을 통하여 원령공주가 일본에서 1000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그 명성은 알고 있었지만 디빅을 통해 본 그 실체란..문화적 충격이란 단어를 현실에서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난 단번에 일본 애니메이션에 매료된 후 일본이란 나라 전체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문화컨텐츠의 중요함은 그 경제적 가치 뿐만 아니라, 국가 이미지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원령공주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부정적 일본의 모습은 없었다. 거기에는 자연신 숭배 사상과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는 메세지로 가득차 있었다. 나중에 원령공주를 만든 사람이 어릴적 미래소년 코난으로 수요일(그렇게 기억된다)마다 우리 형제를 TV앞에 붙잡아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았을때 저절로 고개가 끄덕거려 졌다.

 

 올해는 한일합방 100년이 되는 해이다. 선대들이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막으려고 하던 시점에서 한세기가 지난 지금 난 일본 애니를 예찬하는 글을 적고 있으니..부끄러워해야 하나..애니메이션의 뿐만 아니라 지금은 우연잖게 부상한 오른팔 때문에 잠깐 쉬고 있지만 일본에서 발달한 검도를 수년째 연마하고 있으니 독립 운동을 하던 투사가 만약 이글을 본다면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문제의 확실한 관점은 아직 내게 없다. 쉬운 문제도 아니고.. 암튼 난 일본문화를 좋아한다. 지난 여름 휴가때 읽으려다가 게으름에 밀리고 앨빈 토플러의 '권력이동'에 밀려서 이제 겨우 1권을 읽은 여행작가 김남희의 '일본의 걷고 싶은 길'을 현재 '부의 미래'와 같이 읽고 있을 정도다. 그리고, 그런 나의 일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져다 준 결정적인 영화가 원령공주였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주관적인 판단이긴 하지만 픽사와 함께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작품성 높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영화사이다. 픽사가 CG를 바탕으로 소소한 일상의 얘기들로 감동을 주는 작품을 주로 만들었다면 지브리는 전통적 기법의 수작업으로 자연과 인간의 문제를 다룬 대작들을 주로 만들었다. 지브리는 이전작에서도 '벼랑위의 포뇨'라든가, '게드전기 어시스의 전설',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스케일 있는 판타지의 작품을 최근에 내놓았는데, 이번엔 '마루 밑 아리에티'로 소품의 향기를 가지고 있는 영화로 돌아왔다. 그것도 지브리답게 영화 곳곳에 장인의 손길이 가득한 명품의 자태를 가지고 말이다. 다만 워낙 전작들의 스케일이 대단한 지라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나 원령공주 같은 스펙타클하고 드라마틱한 전개를 기대한 관객들에겐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그림체(?)에선 포뇨에서 사용된 파스텔 톤의 유화적인 배경보다는 '이웃집 토토로'처럼 전통적인 그림체의 배경이 그리웠던터라 아리에티의 그림체는 반갑다. 수채화같이 투명하고 아기자기한 정물화 같아서 좋다. 어릴때 읽은 '걸리버 여행기'는 여러번 다른 버전의 책들로 반복해서 읽은 기억이 있는데, '아리에티'는 그런 걸리버 여행기 중 거인국편을 모티브로, 형상과 생활방식은 인간과 흡사하지만 10cm의 키를 가진 소인족 소녀 '아리에티'의 모험 영화이기도 하고 인간(거인족) '쇼우'와의 애틋한 우정과 사랑을 그린 영화이기도 하다. 비록 소품의 형태를 띠고 있긴 하지만 아름다운 녹색 배경과 도전적이면서도 세상이치에 순응하고 적응하며 자기 삶의 주체로서 세상과 마주하는 다른 지브리 영화들의 주인공 소녀들처럼 아리에티 캐릭터에서도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직접 감독을 하지는 않았다-의 남다른 감성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