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길어올리기(2010)
감독: 임권택
배우: 박중훈, 강수연, 예지원, 안병경, 장항선
음악: 김수철(최소한의 음악만 사용된..)
임권택의 영화들은 군더더기가 없다. 영화가 시작하면 바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전주 시청 한지과 필용(박중훈)은 조선왕조실록 복원 사업에 필요한 최상급 한지를 수급하는 업무를 맡는다. 그의 아내 효경(예지원)은 뇌경색으로 지체가 부자유스럽다. 필용은 한지를 공급을 맡을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에 부닥치지만 알수록 매력있는 한지의 세계로 빠져 들어 간다. 다큐 감독인 지원(강수연)은 한지에 관한 작품을 준비하며 필용과 그의 아내 효경의 도움을 받는다. 영화는 세 인물의 통해 거침없이 앞으로 나간다. 스타일적인 면은 최대한 축소되고 카메라도 등장인물들의 동선을 따라 TV드라마처럼 스토리텔링에만 중점을 둔다. 의도적으로 좋은 그림에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화면은 임권택 감독의 대부분의 영화가 그러하듯이 자연스럽게 한국적인 미를 풍기며, 정적으로 인물들의 배경만으로 자리한다. 감독의 오랜 영화작업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그 만의 소박하고 튀지 않는 색감들이 중국 영화들처럼 웅장하거나 일본문화의 화려한 색감들과는 다른 한국적인 미를 차별화시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공간적으로는 한정되고 색감으로는 밝으면서도 구도적인 면은 그렇게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것은 보는 사람의 느낌이고 영화 중반부에 보름달 떠있는 농로 같은 길을 승용차로 필용과 지원이 가는 장면들도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을 것이 분명하다.
임권택 감독의 백한 번째 영화로 알려진 이번 '달빛 길어올리기'는 여러 면에서 그의 96년 작 '축제'를 떠올리게 한다. 인생에서 가장 슬픈 사건인 죽음을 마주하는 한국인 특유의 복합적인 감정이, 장례에서 축제라는 상반되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는 발상으로, 점점 간소화 되고 잊혀져 가는 장례절차와 의식을 후세에 남긴다는 사명으로 기록 영화처럼 찍은 영화가 축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라져 가는 한국적 문화의 영화적 기록이라는 측면에서는 '서편제'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본다. '달빛..'은, 판소리나 장례절차가 한지로 바뀌었을 뿐 한국적 미와 전통을 기록해야 한다는 노감독의 열망은, 전작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영화들은 다소 드라마틱한 요소가 부족하고 꾸며지지 않았더라도 다른 극영화들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난 한지, 창호지, 화선지 등을 구분하지 못했다. 다 통틀어 한지라고 불리는 줄 알았다. 닥나무의 줄기를 벗겨 내어 삶아 그 섬유질을 얇게 떠 말린 것이 한지라고 한다. 그리고, 잘 만들어진 한지는 천년을 간다고 하니, 종이라면 보기좋고 흰 A4 용지가 최고라고 생각해온 나 같은 사람의 무식함이 부끄럽다. 앨빈 토플러의 책을 읽고 유사이래 인간이 축척된 정보의 양보다 지난 50년간 컴퓨터가 발명되면서 기록된 정보의 양이 많다고 적은 글이 생각난다. 그 막대한 정보는 거의 종이가 아니라 하드디스크에 기록되어 있을 터인데, 그 자기(磁氣)적 정보들이 천년이란 시간의 테스트를 견딜 수 있을지 불안하다. '달빛..'에 나오는 천년을 견디는 종이가 있다면 컴퓨터에 저장하는 정보도 한지 같은 질 좋은 종이에 백업 용도라도 병행 기록 보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 까지 생각이 미친다.
프로필을 보았다. 임권택 감독은 36년 생으로 88년을 제외하고 62년 부터 94년 '태박산맥'에 이르기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영화를 찍은 기록적인 다작의 작가이자 '장군의 아들'로는 90년대 최고의 흥행 감독이기도 하고, 최초로 서울관객 100만을 넘긴 '서편제'를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은 개봉한 뒤 2주면 흥행여부가 판가름 난다는 초스피드 멀티 플렉스 3D 영화판에서 느릿 느릿 그러나 확실한 족적을 남기며 한국 고유의 아름다운 것과 전통적인 것들을 영화에 담아가는, 그의 영화에 항상 등장하는 '장인'이 바로 감독 자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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