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북한의 동기는?
어제 천안암 침몰에 대한 군민 합조단의 발표가 있었다. 북한의 소행을 뒷받침하는 일부 어뢰 부품이 공개되었다. 이제 한반도는 6.25 이후
다시 남북 전면전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게 되었다. 현실적으로 전면전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지만 남북 정권이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이 같은 상황에선 이성과 논리를 두려움과 야성이 이길 수도 있음을 알기에 불안하다.
개인적으로 어제 합조단 발표를 TV로 보면서 그 내용에 대해 상당한 신빙성이 있음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북한의 소행이라고 단정하는데 망설여지는 것이 아마 '북한의 도발 동기'에 관한 부분이 확실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남한의 함정을 기습 공격하여 이런 긴장을 유발하는 것이 과연 북한 정권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부분이다. 한 국가의 외교정책은 철저히 자국 이익을 실현하는 쪽으로 움직여 가는게 정상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와 같은 도발행위로 북한이 '과연 얻을 수 있는 득이란게 무엇이 있을까'란 점에서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간 상대적으로 북한의 입장을 지지해온 중국마저 곤란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동기로써 "권력이양 준비 단계" 혹은 "경제환경 악화로 인한 민심 이반" 등의 이유로 인한 내부 결속용으로 외부 적을 만들려는 목적이란 분석도 하고 있지만 득실관계를 따져 볼때, 국제사회에서 테러국가의 이미지가 더 악화되고, 남북 경협 중단, 자칫 전면전으로 번질 경우 북한 정권의 사활이 걸린다는 점에서 득보다 실이 훨씬 많아 보여 동의하기 망설여진다. 반면에, 상당수 언론과 네티즌들이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정부와 군당국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는 것은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될 시, 과연 누가 가장 큰 득을 볼 것이냐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사실 관계만 따져 어떤 사안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세상이 살기 쉬워 질까만, 경험을 통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또, 국익이라는 것은 절대 명제이지만 국익과 정권의 이익은 현실적으로 별개의 문제나 다름 없을 때가 많기 때문에, 아직 천안함 침몰과 관련한 정부의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할 수만은 없다.
2. 영화 속 전쟁의 이미지
전쟁은 인류의 진화와 생존에 있어서 영원한 탐구 숙제이다. 그런 만큼 전쟁에 대한 영화는 셀 수도 없이 많고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내게 '전쟁을 다룬 영화',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대표 이미지는 바로 이 영화이다.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1979).
난 아직도 이 영화의 내용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워낙 충격적인 장면과 사실적 그림이 많아서 그렇기도 했지만, 전장에서 아군과 적이 아닌, 전혀 다른 제3의 인물이 등장하는 상황이, 나쁜 놈 아니면 우리 편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지배했던 전쟁영화에 대한 내 안의 통상적 이미지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베트남의 밀림에 적도 아군도 아닌 교주처럼 은둔하고 있으면서 군지휘부를 당혹케하는 커츠 대령(마론 브란도)을 통해 전쟁은 누구도 완전하게 컨트롤할 수 없는 일종의 광기(狂氣)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한국 영화에도 이런 인물이 등장한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남쪽에서 상처받고 북쪽에서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진태(장동건)라는 인물도 큰 의미에서 결국 커츠 대령과 비슷하지 않나 싶다. 최근에 오스카에서 아바타를 이기고 작품상을 받은 허트 로커에도 비슷한 인물이 등장한다. 제레미 레너가 맡은 새로 온 팀장도 임무의 책임감이 강한 만큼 폭발물에 대한 두려움의 강도가 점점 약해지면서 현실에서 자기자신만의 울타리 안으로 함몰되어가는 것이 '커츠'나 '진태'와 닮아 있다.
3. 전쟁유발의 본질은 두려움-섬 오브 올 피어스
20세기 후반, 세기말을 앞두고 있던 인류의 최대 공포는 핵이었다. 냉전시대 소련과 미국간의 군비 확장의 산물인 대륙간 전략핵들은 그 자체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카메룬 감독의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스카이넷이라는 가상 프로그램이 핵을 이용하여 인류를 공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쟁을 광기에 빠지지 않고 이성적으로 수행하는 것 자체가 순진한 환상이라는 영화적 고발이 지옥의 묵시록, 플래툰 같은 영화들이라면, 카메룬 감독이 만든 터미네이터 시리즈, 어비스를 포함한 일련의 작품들은 인류 자신이 만든 살상무기인 핵무기 또한 우리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음에 대한 영화적 경고이다. 총이 많은 나라에서는 총이 없는 나라보다 총에 의해 희생될 확률이 높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섬 오브 올 피어스(The Sum of All Fears, 2002)는 지상 최대 핵 보유국인 미국과 러시아 두나라가 전쟁으로 치닫는, 지난 세기말부터 유행했던 인류멸망 시나리오 중 하나를 그리고 있는 영화이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핵을 론치(launch)하는 주체가 스카이넷 이었다면, 섬 오브 올 피어스 에선 그 주체가 우리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본능적인 두려움(fear)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진검을 빼어든 비슷한 실력을 가진 두 무사의 결투는 목숨을 담보로 한 대결일테고, 승리한 무사도 심한 부상을 당할 확률이 높은 것처럼 전쟁의 무기가 핵을 전제로 한다는 것은 승패와 상관없이 공멸의 길로 들어선다는데 중세 전쟁과 현대전의 두려움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섬 오브 올 피어스'의 시작은 끔찍한 내용과는 다르게 'If we could remember'라는 아름다운 소프라노 곡으로 시작한다. 1973년 시리아, 이집트 와의 전쟁때 궁지에 몰린 이스라엘이 핵폭탄 하나를 전폭기에 탑재한다. 그러나, 그 전폭기는 격추되고 폭탄은 30년이 지난 후, 무기 거래상을 거쳐 파시즘과 구소련 회복을 동경하는 러시아 강성군부세력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실제 소련 붕괴 당시, 서방의 군사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것 중 하나가 연방의 붕괴로 러시아 주변국에 산포 배치되어 있을 핵무기들이 테러에 쓰이거나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이었다. 만약, 영화와 같이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핵은 앞서 말한 것처럼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어떤 정보와 정책으로도 예측할 수 없는 카오스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영화에서 핵폭탄은 해로를 통해 풋볼 경기가 열리는 볼티모어 항구로 들어온다.
그리고, 폭발.
911테러를 예견(개봉일이 2002년이라면 영화제작은 911 이전에 거의 마무리 되었을 것)한 듯한 미국본토 공격장면이 파격적이었다. 당연히, 미정부는 러시아를 의심하게 되고 보복하게 되는 과정에서 두 나라의 최고결정자는 운명의 전략핵들을 서로를 향해 론치시키게 된다.
이 영화에서 처럼 실제에서도 팽팽하게 견제와 대치를 하고 있는 두나라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상호 신뢰(군비경쟁을 중지하고 핵감축과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전쟁억제를 위한 노력)를 깨는 것이 제도권의 통제를 벗어난 드러나지 않는 세력이 될 수 있다는 것과 그로 인한 잘못된 정보가 잘못된 정책결정을 유도하고, 그것들이 현대전의 특성상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두려움과 합쳐질때, 인류는 그간 쌓아온 모든 지혜로서도 막을 수 없는 공멸의 길로 간다는 것이, 전혀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니다. 최고로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서, 최고의 고급정보를, 공공이익을 위한 최선의 마음가짐으로 심사숙고한 결정들이 과연 인류의 생존을 완벽하게 보장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에서 회의적인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이다.
4. 전쟁의 추악함-그린 존
섬 오브 올 피어스가,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이기 때문에 극복할 수 없는 본능적인 두려움과 합쳐져 최악의 상황으로 갈 수 있음을 얘기하는 픽션이라면, 그린 존(Green Zone, 2010)은 반대로 인간이 목적을 가지고 전쟁을 일으키는 것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실제 일어난 전쟁에 관한 영화이다. 아마도 역사적으로 일어난 많은 전쟁들이 여기에 속할 것이며, 목적과는 반대로 엉뚱한 결과를 낳기도 하는 그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전쟁의 유형이다.
전쟁은 기본적으로 생존 즉, 자국 안보를 지키기위한 최후의 수단이다. 그리고, 그 생존을 위협하는 범주에는 자원부족, 군사적 위협, 경제적 위협,미래의 잠정적 위협까지 포함된다. 그런 심각한 위협들을 제거하기 위한 행위가 전쟁인 것이다.
나아가, 인간은 팽창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개체수를 늘이고 영토를 늘이고, 영향력을 확대하는 쪽으로 움직이게 된다. 국제사회에서 힘의 공백이 생기면 열강들은 그 공백들을 자국의 힘으로 채우기 위해 움직인다. 그것도 전쟁의 한 모습이다.
중동은 열강들의 팽창력이 만나는 곳으로 역사적으로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지역이다. 유럽과 러시아, 중국으로 대표되는 아시아 세력, 그리고 2차대전 이후 세계 최강국으로 올라선 미국이 위 세력들과 만나는 힘의 경계이기도 하고, 서방세계의 종교와 이슬람권의 종교가 만나는 종교의 경계, 문화의 경계이기도 하다.(한반도를 가로지르는 휴전선도 그런 경계의 하나이다.) 아직도 서구세계에 편입되지 않고 독자적 문화와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이 지역은, 오랜 전쟁을 치루며 형성된 호전적인 기질까지 미국과 유럽같은 서방에겐 잠재적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내연기관이 발명된 후 석유의 경제적 가치가 높아진 점까지 감안하면, 엄청난 자원까지 매장되어 있는 지역이기도 하므로, 석유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선 경제적 위험요소까지 가진 껄끄러운 지역이기도 하다.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정부가 이라크를 침공한 것은 앞서 말한 생존과 본능의 관점에서는 당연한 일에 가깝다. 온갖 외교적 수사와 국제사회의 공조로 포장되어 있지만, 영국이 제국이었던 시절 동인도회사를 앞세워 인도와 주변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지배하고 수탈한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린 존에서 밀러 준위(멧 데이먼)는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는 임무를 맡은 팀을 이끌고 있다. 지휘부에서 건네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작전을 수행하지만 번번히 허탕만 치는 터라 상부에서 주는 정보의 신뢰도를 의심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는데, 우연히 작전 중 길에서 만난 현지인의 제보로 이라크 저항정부의 고위간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대량살상무기존재는 미정부와 이라크 일부세력간의 정치적 거래의 산물임을 알게 된다. 본 시리즈의 그린그래스, 데이먼 콤비답게 힘있고 빠른 핸드헬드 화면이 전쟁의 긴장감을 전해 준다. 다만, 야간장면이 많은 후반 추격신에서는 화면의 입자가 거칠고 너무 어두워 긴박한 추격신임에도 답답한 느낌은 군데군데 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갈등을 폭력행사로 풀려 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국가간의 폭력도 마찬가지로, 갈등의 근본적인 해법은 될 수가 없다. 그러나, 같은 사회 구성원간의 갈등은 법에 의해 강제될 수 있지만, 국가간의 갈등은 국제법이나 조약등으로 전적으로 강제될 수 없기에 막연히 평화적 해결만을 주장하는 것도 순진한 생각일 수가 있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거시적인 면은 차지하고, 확실한 것은 개인적인 면에서는 누구 든, 어느편에 서있 든, 위 영화들의 주인공처럼 혼란스럽고 미쳐가고 파괴되어 갈 거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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