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비친세상

협상(The Negotiation, 2018)

센타우리인 2018. 9. 26. 18:02

감독: 이종석

출연: 손예진, 현빈


 닷새간의 긴 추석 연휴가 끝나간다. 명절에 가족들과 영화관을 찾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거의 전통이 되었다. 우리는 이번 추석 영화관에 걸린 한국영화 3개 중 유일한 현대극인 협상을 선택했다. 영화 하나가 거의 스크린을 독점했던 다른 명절과 달리 이번 추석은 안시성, 명당과 협상까지 선택이 폭이 3개나 되어서 관객들에겐 좋은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서울지방경찰청 위기협상팀 하채윤 경위입니다. 영화가 끝나도 귀에 맴도는 대사이다. 우리나라처럼 치안 상태가 좋고, 강력범죄 특히 인질극 상황은 드문 현실에서 실제 경찰에 위기협상 즉 인질범죄 대응팀이 따로 존재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유학파 출신 전문 협상가 하채윤역을 한 손예진의 연기는 나무랄 곳이 없다고 생각된다. 손예진은 멜로극에만 어울릴 것 같은 작은 체격과 귀여운 외모를 가진 컴플렉스(본인도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를 넘어 최근 한국 여배우 중 다작을 하는 배우이기도 하며 멜로 뿐만 아니라 액션, 시대극, 범죄물 등 다양한 쟝르에서 타이틀 롤을 연기한 도전적인 배우이기도 하다. 그는 이번 '협상'에서도 공감 가능한 충실한 연기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 한다.

 그러나, 영화 '협상'에서 하채윤 경위의 다소 파격적인 첫 등장신이 관객의 관심을 잠깐 사로 잡고 나면 러닝타임 내내 영화를 지배하는 것은 민태구 역의 현빈의 용의주도함과 악랄함이다. 태국에서 암약하는 무기거래상 민태구는 대한민국 국정원 요원을 상대로 으름장을 놓을 수 있는 대범함과 협상 상대인 하채윤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잔인함과 지능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인질을 사이에 두고 이 두 인물의 밀고 당기는 머리싸움이 영화 '협상'의 동력이랄 수 있는데, 영화는 중반으로 가며 민태구의 계략과 이유있는 분노에 하채윤은 물론이고 관객들까지 설득 당하는 묘한 상황이 전개된다.

 인질극을 다룬 영화가 꽤 많이 있긴 하지만 인질구출 협상 자체를 소재로 다룬 영화는 흔지 않다. 아마도 국내 영화로는 거의 유일하지 않나 싶은데, 이러한 소재는 사실 대중 영화로 만들기엔 상당한 제약이 있다. 우선 협상은 대화로 진행되기 때문에 공간적으로 모니터와 전화를 통해서만 스토리가 전개되기 때문에 다채로운 화면을 담기가 어렵고, 범죄자와 고도의 심리전을 기대하는 똑똑한 관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범죄 드라마의 악역은 인질을 잡고 있는 범인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영화 '협상'이 진행되어 가며 범인인 민태구의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폭력과 비인간적인 행위에 당위성을 부여하며 그에게 동화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른바 스톡홀름 신드롬이다. (인질범에게 인질들이 동화되고 의지하게 되는 비이성적인 상태) 이것은 민태구가 하는 악행보다 그가 호출하는 부패권력의 그것이 더 악랄하기 때문이다. '협상'에서 진짜 인질범은 민태구가 아니라 국민들을 속이고 자기들의 뱃속만 채우려고 그 사실은 은폐하는 자들이다. 이런 프레임은 협상의 볼거리를 인질의 생명을 구하려는 협상가와 인질범 간의 대결이 아니라 이 모두를 덮어 버리려는 자들과 밝히려는 자들의 대결로 방향전환하며 관객들의 동의를 구한다.

 사실 현빈이 연기한 민태구는 애초부터 협상을 할 용의는 없었다. 원하는게 이미 사라진 상태에서 복수를 위해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는 하채윤과 협상을 한 것이 아니라 관객들과 밀당을 했다고 할 수있다. 이미 각 써 놓은 각본대로 하나 하나 공개하며 관객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또 반전을 주도하여 영화적 재미를 준비하기도 한다. 모든 시퀀스들은 상당히 영리하게 장치되어 눈치채기는 쉽지 않으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관객 감정의 연결도 계산되어 있어 평정심을 가지고 끝까지 보기 어려운 영화이다. 볼 사람은 손수건을 꼭 준비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