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비친세상

비긴 어게인(Begin Again, 2013)

센타우리인 2014. 12. 12. 21:12

 

감독: 존 카니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 마크 러팔로, 애덤 리바인

 

※ 이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체 연휴를 하지 않은 짧은 추석 연휴의 마지막날 영화를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몇년째 삼촌 극장가는데 기꺼이 동행해 주는 고마운 조카들과 함께 해적과 루시와 비긴 어게인 중에서 의견 조율하던 중, 액션영화나 SF영화 취향인 삼촌의 영화편식에 대체로 맞추어준, 음악을 공부하는 큰 조카를 존중하여 비긴 어게인으로 낙찰했다.

 영화를 보기전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었던 나는, 이글을 쓰면서 감독이 '원스'를 만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또, 영화관을 나오며 조카에게 데이브역으로 나온 사람이 진짜 가수냐고 물었더니, 유명밴드 마룬 파이브의 리드 보컬이라고 설명해준다. 어쩐지 노래를 기가 막히게 하더라니..

 싱어송라이터 그레타는 남자친구이자 음악적 동반자인 데이브와 함께 꿈을 펼치고자 뉴욕으로 왔으나 데이브의 배신으로 친구 스티브의 집에 얹혀 지내게 된다. 그녀는 음악의 가치가 진정성에 있다고 믿는 순수한 뮤지션이지만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는 고집도 꽤있는 편이다. 한때 잘 나갔던 음반 제작자 댄은 배우자의 외도로 이혼한데다가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난 신세다. 인생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는 그레타와 댄은 바(Bar)에서 조우하게 된다.

 댄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다. 술에 취하면 음악이 들린다. 정확히 말하면 곡에 걸맞는 악기들의 연주가 들리는 것이다. 그 능력이 그를 성공한 제작자로 만들고, 그래미상을 두번이나 타게 만들었겠지만 알콜중독이라는 부작용도 준 것 같다.

 그레타의 노래를 들은 댄이 그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여 다른 청중은 알아보지 못한 그레타 노래의 진정성에 마술과도 같이 악기의 옷을 입히는 순간은 인상적이다. 그레타의 재능을 알아본 댄은 그녀에게 명함을 내밀지만 음악의 가치는 진정성에 있다고 믿는 그녀에겐 그런 길거리 캐스팅이 가볍게 보일 수밖에 없다. 자리를 옮긴 둘은 본격적으로 음악의 진정성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한다. 그레타는 사람들이 진정성있는 음악을 원한다고 믿는다. 댄은 진정성을 버리라는게 아니고 우선 사람들이 음악을 듣게 만들어야 그 진정성도 힘을 발휘할 게 아니냐고 그레타를 설득한다.

 음악의 진정성(Authenticity)..이 영화가 찾고 있는 주제이다.

데이브와 그레타는 연인이자 음악적 동반자이기도 하다. 데이브는 영화음악을 녹음하자는 메이저 제작사의 제안으로 뉴욕에 와서는 연인인 그레타를 배반하고 제작사 직원 밈과 사랑에 빠졌으며, 명성과 투어(Tour)에 중독되어가는 록스타가 되어 가고 있었다. (데이브가 음악적 진정성 외에 추구하는 모든 것의 크기는 그의 수염의 크기와 비례하는 것처럼 영화에 나타나 있다.)

 

 그레타와 데이브가 추구하는 음악의 차이는 두 사람이 헤어진 후 다시 만나 그 동안 각자의 음악적 성취 혹은 방황(?)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가난했던 시절 크리스마스 선물 대신 그레타가 데이브을 위해 작곡한 Lost Stars란 곡의 믹싱에 대한 견해 차이가 바로 그것이다. 데이브가 들려준 Lost Stars는 대형공연장을 위한 팝(Stadium Pop)인 반면 그레타가 원하는 것은 둘만을 위한 발라드였다. 곡의 쟝르에 따라 음악의 진정성이 변할 순 없겠지만 그레타는 원래의 의도대로 발라드로 곡을 만드는 것이 음악적 진정성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Lost Stars'는 굉장히 아름다운 곡이다. 애덤 리바인의 엄청난 보컬과 어울려 드라마틱과 달콤함 사이를 오가는 멜로디 라인이 일품이다. 그러나, 들을수록 차분한 키이라 나이틀리 버젼이 편하게 들리는 것은 음악적 진정성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한편, 댄의 제안을 받아들인 그레타는 댄과 그를 쫓아낸 제작사로 오디션을 보러 간다. 제작사의 대표 사울은 데모도 없이 찾아온 그레타의 고집센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댄과 그레타는 데모테이프를 만들 돈이 없었다. 그들은 주변 경치좋은 카페에서 대책을 논의하다가 야외레코딩(Outdoor Recording)을 하기로 의기투합한다. 

 야외레코딩은 음악의 진정성과는 사실 거리가 멀다. 그것은 진정성보다는 음악의 파격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기존의 낡은 것에 대한 변화, 권위적인 것들에대한 도전, 상식적이고 안정적인 것들에 대한 모험, 이런 것들이 비긴 어게인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정신들이다. 밴드의 구성원들에서도 그런 정신이 반영되어 있다. 우선 그레타는 작곡자이지 가수(Performer)는 아니다. 댄도 프로듀싱을 해본지 오래된 제작자이다. 현악연주자들은 클래식을 공부하는 학생들로 클래식 연주에 회의를 느끼고 있는 중이다. 피아노 연주자 또한 어린이 발레학원에서 지루한 발레음악을 반복적으로 연주하는데 피로감이 쌓인 사람이다. 댄과 그레타의 밴드에 참여한 사람들은 음악을 하는 것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음악하는 즐거움을 찾아 여기에 모인 것이다. 연주하는게 즐거운 음악. 물론 그것도 음악적 진정성의 한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레코딩을 하는 과정에서 문득 문득 비치는 뉴욕의 풍경들은 이 영화를 아름답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이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로맨틱 영화들은 뉴욕의 명소들을 하나의 세트처럼 사용했고 비긴 어게인도 다르지 않다.

 레코딩이 끝난 후, 결과물을 들고 다시 찾은 제작사의 제안을 수익배분 비율을 문제삼아 거절한 그레타는 결국 온라인 스토어에 자신들의 앨범을 1달러에 올려 버린다. 비긴 어게인은 앞서 얘기한 음악적인 진정성이란 주제에서 나아가 음악을 하는 궁극적인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한 다음, 그레타가 앨범판매가를 기존 앨범의 10분의 1로 판매하는 순간, 음악을 둘러싼 산업적이고 비즈니스적인 환경 즉 자본으로부터 탈출해버림으로써 진정한 음악을 구속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는데 성공한 셈이다. 연주하는 사람이 즐거운 음악, 자본이나 산업으로부터 자유로운 음악, 그리고 듣는 사람이 편안한 음악이 비긴 어게인이 찾은 음악의 진정성이 아닐까 한다. 아마 그레타 자신도 데이브가 공연장에서 말끔한 차림으로 Lost Stars를 노래하는 모습에서 자신이 찾던  음악의 진정성을 보았을 것이다.